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수 어록 전승 (문단 편집) == 어록 전승의 담지자들과 성립 환경 == 특히 유럽권 학계에서는 어록 전승의 담지자들로 유랑 급진주의 설교자 집단을 상정한다. 반면 미국 학계에서는, 어록 전승의 담지자들이 유랑 설교자들이 아니라 정주(定住) 율법 교사[* 율법 교사가 지목되어서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지만, 초세기 교회에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율법 교사들이 있었다. 특히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가 율법 교사로 추정된다.]들이라고 본다. >유랑 급진주의{{{-2 Wanderradikalismus(G, Theissen)}}}라는 명제가 특히 유럽에서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. 자기 소유{{{-2 (집, 밭 등)}}}를 포기하고 가족과의 인연을 끊어버린{{{-2 (Q 9,57-62; 10,4; 14,26)}}} 사람들이 자기네 삶의 방식을 통해 그들이 선포하는 메시지를 증언했다는 것이다. ... 타이센{{{-2 (Wanderradimalismus)}}}이 보기에,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이 예수 어록 출전(Q)의 본원적 전승 담지자다. 타이센은 그들의 선포를 통해 심정적 지지자 집단들, 즉 Q-메시지에 원칙적으로 찬동하지만 가족과 재산 포기라는 급진적 윤리에 스스로 투신하고자 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. 그들의 집이 이를테면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의 거점들을 형성했다. Q의 본문들 안에서도 그들의 상황이 고려되고 있다: 그들은 앞으로도 (더 많은)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이 생겨나기를 기도해야 한다{{{-2 (Q 10,2)}}}. 자신들에게 (돈을) 청하는 사람들에게 넉넉히 주어야 한다(Q 6,30); 보물을 이 땅에 쌓아 놓지 말고, 하늘에 쌓아야 한다{{{-2 (Q 12,33-34)}}}. 이 두 가지는 바로 '''아무것도''' 가지고 있지 않은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을 염두에 둔 요구들이라 할 수 있다. Q의 맥락에서 이 두 요구는 정주{{{-2 (定住)}}}해서 사는 심정적 지지자들의 상황에 전용{{{-2 轉用}}}된 것으로, 또는 원수 사랑{{{-2 (Q 6,27-36)}}}과 걱정하지 말라는 촉구{{{-2 (Q 12,22-31)}}}의 속기{{{-2 續記}}}로, 주{{{-2 主}}} 본문의 수정된 부록 같은 것으로 보인다. 또한 도둑에게 급습 당하지 않는 집주인에 관한 비유{{{-2 (Q 12,42-46)}}}도, 정주해서 사는 사람들에게서만 실제적 공명{{{-2 共鳴}}}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. 타이센에 따르면, 결국 이 심정적 지지자 집단들이 이를테면 감사{{{-2 監査}}} 주체를 형성하고 있었다. 무엇이 전승되고 무엇이 전승되지 않았을지가 그들의 수용{{{-2 受容}}}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{{{-2 (Jesusbewegung 81)}}}. 그러나 전승의 본원적인 생산적 담지자들은 어디까지나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이었다{{{-2 (비판에 관해 T. Schmeller, Brechungen; W. Stegemann, Wanderradikalismus 참조)}}}. > >특히 미국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패러다임은 전혀 다르다{{{-2 (J.S. Kloppenborg Verbin, Excavating 166-213; W.E. Arnal; R.A. Horsley, Q and Jesus)}}}: ①전승의 담지자는 급진적 유랑 설교자들이 아니라 마을에 정주한 서사{{{-2 書士}}}, 즉 율법 교사들이었다. ②초기 단계에서는 유랑 급진주의가 존재했겠지만 Q가 작성됨으로써 그 의의를 잃었다. ③급진적 삶의 방식을 촉구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. ④결국 Q는 가정과 재산 소유를 전제하고 있다. ⑤본디 Q의 의도는 하느님의 직접성{{{-2 Gottunmittelbarkeit}}}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었는데, 이것이 사회비판적 악센트{{{-2 [사회적·종교적 지배 제도, 구체적으로는 헤로데 안티파스(기원전 4년~기원후 39년)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저항]}}}도 지니고 있었다.⑥ 사자{{{-2 使者}}} 파견과 유랑 선교를 여전히 상정해야 한다면, (주거 밀집 지역인 갈릴래아에서)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'시벽 산책'{{{-2 morning walk}}}이었으리라는 것이다. >---- >-마르틴 에브너{{{-2 Martin Ebner}}}·슈테판 슈라이버{{{-2 Stefan Schreiber}}} (Hrsg.). 《신약성경 개론》{{{-2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}}}. 이종한 옮김. 144-146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